“자기 글에 자신이 재미있지 않으면 세상 모든 사람이 재미있어 하지 않아.”
어제 동료에게 한 이야기이다. 작년 2월에 박사를 졸업하고 홍보 사업에 뛰어들면서 힘들었던 게 8년간 논문을 쓰면서 굳어진 문장 스타일이었다. 페이스북은 원래의 내 문장 투를 찾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윤동주의 詩 <별 헤는 밤>을 우연히 읽고 감동을 받았다. 한데 엉뚱하게도 나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매일 몇 편의 시를 쓰고 어떤 날은 10편이 넘는 시도 쓰고, 그것도 모자라 소설도 썼다. 시와 소설을 쓰려고 도서관에서 시집과 소설책들을 빌려 읽고 돈만 생기면 책을 사서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난 80명 정도 하는 학급에서 70등 정도를 하던 놈이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세상이 너무 넓다는 것을 깨닫고는 저 넓은 세상을 다 경험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면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미친듯이 시를 쓰고 소설을 쓰는 건 아마도 고삼 때까지 이어졌던 것 같은데. 스무살 되던 1984년에 대학에 들어와서. 아니 정확하게는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현실을 접하고는 시와 소설 쓰기를 중지하고 그동안 쓴 것들 네다섯 박스를 모두 내다 버렸다. 왜 그랬을까. 평생 궁금증으로 남아 있다. 생각나는 것들 중의 하나는, 문학 창작이 너무 호사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하고 고민하고 공부하고 글쓰는 짓은 나의 평생버릇이 되어 버렸다. 무척 험하고 고되고 어둡기도 한 삶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놀이이다. 중인 장사꾼으로 살아가는 호빗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너무 호사스러운 놀이 말이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_윤동주의 별 헤는 밤 中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