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켈스의 서Book of Kells』

세속화하는 교회를 반대하고 청빈을 주장하는 프라시스코 수도회와 여기에 반박하는 교황청, 그리고 유럽의 왕권 세력들간의 갈등이 커지던 1327년.  교황과 교단들은 이탈리아 북부 베네딕트 수도원에 모여 토론을 하기로 한다.  토론을 앞둔 이 수도원에서 책에 그림을 그리는 채식 수사 아델모의 시체가 발견되고 연이어 수도사들이 살해되면서 수도원은 술렁이기 시작한다.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장미의 이름(The Name of the Rose)>은  14세기 베네딕토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다. 이 소설은 당시 교황과 황제간의 권력 다툼, 교황과 프란체스코 수도회 사이의 논쟁, 제국과 교황에 양다리를 걸친 수도회의 입장, 수도원과 중세 도시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과 동명의 영화가 많은 이들을 몰입시킨 내용은 중세 수도원의 책에 대한 철학과 출판의 과정이었다.

책의 형태를 띤 최초의 필사본, 코덱스(codex)

종이를 만들어 인쇄하는 기술이 개발되기 이전에 중세 유럽에서 책은 두루마리에서 코덱스로  제작 방식의 변화를 겪게 된다. 많은 성서 사본들은 파피루스 두루마리였다. 기원 후 4세기경까지 그렇게 사용되다가 성서 사본을 만드는 데 벨럼을 사용하게 되어 파피루스를 사용하는 일이 줄어든다.

구약성서의 부분인 이사야(Isaiah)서의 사해 두루마리는 가죽으로 된 두루마리이다. 1947년 양치기 소년들이 사해의 북서쪽 기슭에 있는 키르바트쿰란의 동굴에서 우연히 발견한 필사본 두루마리들을 발견하는데 이 때 발견된 것들을 사해 두루마리(Dead Sea Scrolls)라고 부른다. 사해의 두루마리는 히브리 성서를 포함한 900여 편의 다양한 종교적인 문서들을 아우른다.

기원전 2세기에서 1세기에 걸쳐 작성된 이 필사본들의 발굴은 고고학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꼽힌다. 이 사본을 복원하여 학자들은 히브리어 성서가 확립된 시기가 AD 70년 이전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BC 4세기부터 AD 135년까지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었으며, 초기 그리스도교와 유대인의 종교 전통이 어떤 관계를 갖고 있었는지 밝혀낼 수도 있었다.

사해 두루마리(Dead Sea Scrolls)

성서의 경우, 두루마리 책 1권으로는 마태오의 복음서 하나 정도를 베낄 수 있었지만, 보통의 코덱스 한 권에는 사대복음서와 사도행전이 모두 들어갈 수 있었으며, 코덱스 1권에 신약성서와 구약성서 모두를 담은 것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코덱스(codex)는 지금의 책과 비슷한 형태로 낱장을 묶어서 표지로 싼 것이다. 코덱스라는 단어 는 “나무의 줄기”, “나무 블록”또는 “책”을 의미 하는 라틴어 caudex 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파피루스 식물의 줄기를 찧어서 두루마리 방식으로  책을 만들어 일던 방식이 낱장을 묶어서 만드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이다.  코덱스 이전에는 주로 파피루스 두루마리나 밀랍판(蜜蠟板)이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글이 씌어진 페이지들을 하나로 묶었다는 점에서 책 형태를 띤 최초의 필사본인 코덱스가 존재했던 것이다.

코덱스는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두루마리에 비해 몇 가지 장점이 있었다. 두루마리는 원하는 내용을 찾으려고 할 때 일일이 펼치거나 감아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코덱스는 원하는 페이지를 쉽게 펼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코덱스는 페이지의 양면에 글을 쓸 수 있어 단 1권에도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있었다. 양이나 송아지 가죽이 사용되었다. 양피지(羊皮紙)는 양의 가죽을 씻어 늘인 다음 석회로 처리하고 건조하여 표백해서 만들다 보니 코덱스 책은 매우 비싼 가격이었을 것이다. 중국에서 개발된 제지법이 유럽에 전파되고 구텐베르크 인쇄기가 출현하기 전인 14세기 이전 시대에는 필사하고 묶어서 제본하는 코덱스 방식을 통해 책을 만들었던 것이다.

9세기에 만들어진 성서 코덱스.출처_위키피디아

9세기에 만들어진 성서 코덱스.출처_위키피디아

코덱스 출판 제작 기술의 확산

코덱스는 그리스나 로마의 유물로서도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중세 이전에도 사용되던 방법으로 판단된다. 유럽의 코덱스와는 별개로 멕시코의 아스텍인들도 1000년경부터 코덱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스텍의 코덱스는 그림이나 상형문자들로 씌어졌는데, 점성술로 미래를 점치거나 왕조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또한 세금 징수 같은 행정적인 목적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하지만 코덱스 방법이 확산된 것은 가톨릭이 로마의 국교가 된 이후의 중세가 교황청과 그리스도교 중심으로 변화하던 역사적, 문화적 환경과 관련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기독교인들은 한권으로 두툼하게 만들어진 성경책을 좋아한다. 수요자의 니즈(needs)가 생산 방식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가톨릭이 고대 후기와 중세시대에 책을 만드는 활동이 지속되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인데, 거슬러 올라가면 수세기 동안 경전을 경외시해온 유대교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상대적으로 손상되지 않는 재료에 기록하려던 노력에 따라 파피루스보다 튼튼한 벨럼지나 양피지 코덱스를 사용했던 것이다.

에디오피아의 필사본 성경 코덱스. 출처_위키미디어

에디오피아의 필사본 성경 코덱스. 출처_위키미디어

처음에는 양피지로 된 코덱스가 쓰였으나 그후에는 종이로 된 코덱스가 더 널리 쓰였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코덱스는 4세기경에 만들어진 그리스어 성서 필사본인 『코덱스 시나이티쿠스(Codex Sinaiticus)』이다. 5세기경에 만들어진 또 다른 그리스어 성서 필사본인 『코덱스 알렉산드리누스'(Codex lexandrinus)』는 현재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코덱스 출판 제작 방식은 개발되면서 곧바로 두루마리 방식을 대체한 것으로 판단되는데 이미 6세기 이후에 두루마리로 제작된 책들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코덱스 아우레오스(codex aureus)라는 말이 있는데, 무렉스(murex)라고 하는 자주색 물감으로 물들여진 종이나 양피지에 황금색 글씨로 씌어진 책을 뜻합니다. 코덱스 아우레오스로서 현재 남아 있는 것들은 대체로 8~9세기에 제작되었습니다. 코덱스의 재료는 동물의 가죽을 며칠 동안 석회에 담가 두었다가 씻어서  프레임에 붙여 말려 제작하였다. 중세의 책들 중에는 사람의 피부로 만든 책들도 발견되고 있는데  가장 최근의 것으로 17세기의 것도 있다.

15세기경부터는 종이에 씌어진 원본들도 흔하게 발견된다. 성직자나 연구자들이 성서를 인용할 때 여러 경전을 찾아 비교 연구를 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그런 면에서도 많은 양의 책들을 펼쳐서 비교할 수 있는 코덱스가 더 편리했을 것이다. 가톨릭은 전세계 전도를 목표로 했기 때문에 수많은 성서 코덱스가 계속 제작됐을 것이고 국교화된 로마 제국의 시기이던 수백년 동안 많은 곳으로 확산되었다.

5세기 서로마 제국 붕괴와 연이은 야만인들의 약탈로 책 보존은 크게 위협받았다. 당시 안전하게 보존할 유일한 장소는 가톨릭 수도원이었니다. 수도원은 사회 혼란 속에서도 서적을 제작하고 도서관을 세우는 일을 맡았다. 수도원에 설치된 스크립토리움(scriptorium)은 책의 편집과 제작을 통괄하는 스크리토리(scritori)와 필사를 담당하는 코피스티(copisti)로 구성되었습니다. 수도원들은 도서관과 필사실인 스크립토리움에서 끊임없이 서적을 필사하였다.

라자로 갤디나노(Lázaro Galdiano) 박물관의 (St Jerome in the scriptorium) 출처_위키미디어

라자로 갤디나노(Lázaro Galdiano) 박물관의 <스크립토리움의 성 제롬>(St Jerome in the scriptorium) 출처_위키미디어

구술을 통해 여러 필경사가 동시에 같은 내용을 복사하던 로마 시대 상업적 출판 행위와는 달리 수도사들은 내용을 1부씩 베껴쓰는 방식이었습니다. 베껴쓰기가 끝나면 교정을 보면서 제목이나 주석 등을 달았고, 그후 채식자(彩飾者)의 손으로 넘어가 그림이나 기타 장식적인 부속물들이 보충되었으며, 마지막 단계로 제본이 이루어졌습니다. 책 특히 성경을 성직자와 귀족들에게 판매하여 수익을 얻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수도사들의 필사 작업은 수도원의 중요한 활동이자 선교 활동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아일랜드의  소중한 보물, 켈스의 서Book of Kells

중세 그리스도교 예술 작품으로서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 가장 아름다운 작품의 하나인 『켈스의 서(Book of Kells)』는 아일랜드 역사에서도 가장 소중한 보배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상으로 지정되었다. 서기 800년경에 제작된 이 책은 라틴어로 작성되었으며, 예수의 생애를 담은 《마태오의 복음서》 《마르코의 복음서》 《루가의 복음서》 《요한의 복음서》 등 4복음서와 예수의 전기, 그리고 몇몇 보충적인 텍스트가 680장의 최고급 양피지에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은 바깥의 세속과 격리된 아일랜드 수도원 필경사들의 이루어낸 예술의 절정이다.

『켈스의 서』는 아일랜드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에 보관되어 있어서 매년 약 500,000명의 방문자들이 방문하고 있다. 수많은 세월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사랑하게 된 것은 책을 구성하고 있는 아름다운 채색 그림과 장식들이다. 이 그림과 장식들에는 중세 그리스도교 신앙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풍부하고, 그리고 예술성 높게 반영되어 있다. 다소 복잡한 장식 문양들은, 문단의 첫 글자나 초상화 주위로 배치되어 페이지 전체를 구성하는 경우로부터 시작해서, 글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는 아주 세부적인 부분에까지 이르고 있다. 이러한 장식들은 페이지마다 빠지지 않는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의 켈스의 서

이 책은 언제 어떻게 제작되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게 밝혀져 있지 않고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다. 수많은 의문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지만 이러한 의문들은 연구자들이나 대중들에게 어떤 신비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프랑스의 예술사가 프랑수아즈 앙리(Françoise Henry)는 1974년에 다음과 같이 썼다. “『켈스의 서』는 중세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시기에 서양에서 작성된 가장 빼어난 필사본이다. 복음서의 텍스트 사이에는 채식이 들어간 커다란 페이지가 자리 잡고 있다. 그들 채식은 화려한 색상의 장식 문양과, 거의 기하학적인 직물 주름 속에 감싸인 종교적인 낯선 피조물이 서로 얽힌 것이다. 텍스트가 있는 페이지에서는 환상적인 피조물의 길게 뻗거나 휘어진 몸을 표현한 채식으로 만든 첫 글자의 다채로운 아라베스크가 즐비하다. 이 놀라운 문양의 탐구에 몰두한 연구자는 곧 힘과 신비한 느낌에 한꺼번에 빠져든다.”(프랑수아즈 앙리, 『켈스의 서』, New York: Alfred A. Knopf, 1974.)

『켈스의 서』는 장식 문양의 풍부함에 의해 동시대에 만들어진 다른 필사본들과 구별된다. 양피지에 필사된  작품들은 화려하게 장식된 첫글자, 이슬람 미술을 닮은 듯한 기하학적 무늬들로 구성되어 있다. 빨강, 노랑, 보라, 검정 잉크들을 주로 사용한 텍스트는 성상화풍의 지극히 미묘한 이미지들에 의해 장식되는 동시에 살아서 용솟음치는 느낌을 전달한다. 중요한 단어와 문장들은 두드러지게 만들어져 있으며, 텍스트는 세밀하게 만들어진 첫 글자들과, 고갈되지 않는 창의성을 증명하는 행간의 그림들로 인해 마치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채식이 이루어진 큰 페이지들은 각 복음서들의 도입부에서 복음서 저자들의 상징과 초상, 예수의 초상과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의 초상, 예수가 사막에서 사탄에 의해 시험에 드는 장면 및 예수가 체포되는 장면을 담고 있는 삽화를 보여 준다.

채식이 이루어진 큰 페이지들은 상당히 복잡한 구성과 성상 표현법을 보여 준다. 그들은 다음과 같다. 미사 전문표(典文表)(폴리오 1뒤-6앞), 복음서 저자들의 상징들을 모아 놓은 페이지(폴리오 1앞, 27뒤, 129뒤, 187뒤, 290뒤), 천사들로 에워싸인 아기 예수와 성모의 그림(폴리오 7뒤), 성 마태오(마태)의 초상(폴리오 28뒤), 예수의 초상(폴리오 32뒤), 성 요한의 초상(폴리오 291뒤),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복음서 관련 필사본에 있는 것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예수가 사막에서 사탄의 유혹을 받는 장면과 예수가 후일 로마 군사들에게 체포되는 장면(폴리오 114앞, 202뒤), 말타 십자가(croix de Malte)와 8개의 원형 초상(médaillons)을 나타내는 장식이 테두리에 들어 있는 페이지(폴리오 33앞) 등이다.

예수의 부활을 상징하는 모노그램(monogram, 이 모노그램은 그리스어 ‘그리스도’의 첫 두 글자 카이(C)와 로(R)로 이루어진다)이 들어 있는 유명한 페이지는 예수 탄생에 대한 성 마태오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도입부 역할을 하고 있다(폴리오 34앞). 각 복음서의 첫 단어는 많은 장식이 이루어져 있다. 본문에는 매듭 무늬로 장식된 테두리와 물결모양으로 그려진 동물들이 나온다. 화려하게 꾸민 대문자들은 작게 쓴 본문들과 그림으로 표현된 글자들로 이어진다. 이 글자들에는 아일랜드 필경사들만이 표현한 둥글둥글한 글꼴이 적용되어서 각진 모양의 글자들을 좋아하던 유럽 대륙의 글꼴과도 구분된다. 원래 로마의 저술가들은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다. 아일랜든 필경사들은 글꼴을 둥글둥글하게 개발했을 뿐만 아니라 잔어들 사이에 뜨어쓰기를 적용하여 책을 읽는 이들을 배려한다.

『켈스의 서(Book of Kells)』의 본문 페이지

그림 삽화로 구성된 페이지

바이킹의 시대, 아름다운 성서 출판의 막을 내리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복음서 제작은 7세기와 8세기에 바이킹들이 도착하면서 막을 내린다. 아마도 『켈스의 서Book of Kells』가  만들어졌을 아이로나섬은 806년에도 바이킹이 도착하여 수도사 68명이 살해당하고 825년에는 수도원장이 살해당했다고 전해진다. 그후에 아이오검의 종교적 보물들은 아일랜드 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켈스(Kells) 지방의 수도원으로 옮겨져 보관된다.

바이킹에 대한 이야기는 중세의 민중들의 세계관과 판타지와 연관된다. 뿔이 달린 투구, 곰이나 늑대의 털을 뒤집어쓰고 싸우는 야만적인 모습으로 묘사된다. 바이킹(Vikings)은  게르만족 노르드인이고, 노르드어를 사용하며, 고향 땅인 스칸디나비아로부터 8세기 말에서 11세기 말까지 북유럽과 중앙유럽까지 항해하며 교역하거나 약탈로 활보한 바닷사람을 가리켜 바이킹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변장술을 통해 짐승의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바이킹들이 썼던 원형 철모는 칼로 나무리 내리쳐도 끄떡 없었다고 전해진다.

무엇보다 바이킹을 무적으로 만든 것은 그들의 항해술이었다. 793년에서 850년에 이르는 시기 바이킹은 이교도, 강도, 약탈자로 악명을 날리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에 잉글란드와 아일랜드에 대한 정보과 약탈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현재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은 바이킹들이 만든 도시이다. 당시의 역사적 기록을 간단히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793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국경 지역의 수도원을 공격. 794년 잉글랜드 해안의 수도원들을 공격. 795년 아앨랜드 바다의 섬들을 공격. 799년 프리슬란트, 프랑스 해안 지역을 위협. 820년 아일랜드 정복.  843년 바이킹이 67척의 배를 타고 루아르강을 올라와 낭트 약탈. 845년 120척의 배를 타고  세느강을 올라와 파리 점령. 840척의 배를 타고 스페인을 지나 북아프리카로 감

애니메이션 <켈스의 비밀_The Secret of Kells>

2009년 베를린 국제영화제에는  『켈스의 서Book of Kells』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형식과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애니메이션으로 담아낸  <켈스의 비밀_The Secret of Kells>이 선보였다.  희망과 절망과 사랑을 느끼게 하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 애니메이션은  환상적 감동의 느낌을 공유하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바이킹의 공격에 맞서기 위해 에보트 수도원장은 다른 수사들과 함께 수도원 주위를 에워쌓는 벽을 짓는이야기로 애니메이션은 시작된다. 이때 아이오나섬에서 위대한 책을 기록한다고 알려진 에이단 수사가 고양이 핑거 반과 함께 바이킹을 피해 도망온다. 주인공 브랜든은 <켈스의 서>의 위대함을 깨다고 에이단을 도와주게 되고 책의 잉크를 만드는 데 쓰이는 열매를 얻지 위해 금지된 숲에 들어가는데 그곳에서 산의 주인이자 짐승과 어린 여자아이로 변신할 수 아이슬링을 만나 우정을 나눈다. 바이킹은 도착하고 <켈스의 서>가 만들어지는 데에는 위기가 발생한다.

애니메이션으로 담아낸  <켈스의 비밀_The Secret of Kells>

그림 출처

  •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Baptism_-_Ethiopian_Biblical_Manuscript_U.Oregon_Museum_Shelf_Mark_10-844_b.jpg
  •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Codex_Petropolitanus_fols._164v-165r.jpg
  •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Eliza_Codex_23_Ethiopian_Biblical_Manuscript_a.jpg
  •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Master_of_Parral_-_St_Jerome_in_the_scriptorium_-_Google_Art_Project.jpg

공병훈.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박사 미디어 경제경영 전공,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64년생. 창작과비평사, 동방미디어, 교보문고, 푸른엠앤에스, 세계미디어플러스 등에 재직함. 소셜 미디어와 콘텐츠, 플랫폼, 홍보, 컨설팅 분야 실무자이자 현장 연구자. hobbits8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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